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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파르테논 신전 기둥 및 구조 (역사적 사실)

by 아키텍트류 2020.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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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위에 우뚝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여신에 대한 거대한 대리석 신전입니다. 아테네는 많은 그리스 도시국가들 중 하나였고 거의 모든 도시국가에 아크로폴리스가 있었습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 사이에는 당시 전쟁상태였고 아크로폴리스는 도시 내에서 요새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기원전 5세기가 되자 아테네는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가 되었고 그것이 파르테논의 축조를 가능케 한 요인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테네가 강력한 도시국가가 되자 아크로폴리스는 더 이상 요새의 역할이 아닌 신성한 곳이 되었습니다. 또한 파르테논은 민주주의 탄생의 상징이 될 뿐만 아니라 특별한 건축적인 정교함 때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파르테논은 고전주의 건축 최고로 간주되고 서양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물로 여겨집니다. 이후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건축의 파급력은 엄청났습니다. 특히, 워싱턴 D.C에 있는 Jefferson Memorial, National Gallery of Art, US Supreme Court와 같은 건축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민주주의의 탄생이며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제한적인 민주주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시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는 일련의 개혁들이 있었고 그것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정치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도시에는 약 30~40만 명이 거주하였지만, 실제로 시민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인구는 단지 5만 명 정도였습니다. 여자나 노예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제한적인 민주주의였다고 위에서 언급했던 것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여신에게 헌정된 건축물입니다. 사실 아테네라는 도시 자체가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땄으며 물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신화가 있습니다.

포세이돈과 아테 나신이 도시의 수호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되는데 포세이돈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다의 신이고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입니다.

포세이돈은 바위를 던지고 그것으로 바다의 소금물이 생깁니다. 그러나 아테나는 땅의 풍성함과 평화에 대한 생각으로 올리브 나무를 제공했습니다. 결국, 고심 끝에 아테네 사람들은 아테나의 선물을 선택합니다. 

다시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우리가 그리스 신전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양식은 매우 특별합니다. 특히 기둥에 적용된 도리아 양식은 정말 알아보기 쉽습니다. 얇고 넓은 세로 홈의 수직선을 강조한 육중한 기둥들을 볼 수 있습니다.

도릭 양식의 기원은 목조건축에서 진화했다는 의견과 이집트에서 전파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도릭양식의 특징은 주신과 주두로 나뉘어지면 주신은 지름에 비해 높이가 적고 웅장한 외형을 가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3단의 기단위에 직접 주신을 형성하며 주신 표면에 플루팅(fluting)의 수는 보통 20개 정도로 되어있고, 이 주신은 수직축이 신전 중심을 향해 약간 경사지게 되어있으며 주신의 중간은 엔타시스(entasis)가 있어 착시로 인한 미적 고려가 되어 있습니다.

도리아 기둥들은 직접적으로 신전의 바닥으로 내려가는데 이 바닥을 스타일로 베이트(Stylobate)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꼭대기의 기둥머리는 아바쿠스(Abacus)라고 부르는 사각형의 블록에 솟아난 작은 나팔 모양이 있습니다. 그것 바로 위에 트리글리프(Triglyph)메토프(Metope)가 있습니다.

파르테논이 조각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메 토프(Metope), 페디먼트(Pediment), 프리즈(Frieze)에는 정교한 조각들이 있었고 이전 신전들에는 전례가 없던 방식이었습니다. 

프리즈(Frieze)는 우리가 보는 바깥쪽 기둥 열 바로 안에서 건물의 네 방면 주위로 줄곧 뻗어 있습니다. 파르테논을 설계한 건축가는 도리 아적 요소들과 이 오니아적 요소들을 잘 결합시켰던 것입니다.

사실 신전의 서쪽 끝 안쪽에 4개의 이오니아 기둥들이 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이 아마도 종교적인 과정이나 축제를 위해 신성한 길을 걸었을 때 그들은 서쪽 끝에서 만났고 북쪽이나 남쪽 방면에서 파르테논의 주위를 걸어 동쪽 입구로 갔을 겁니다.

페디먼트의 조각들이 있는 입구 바로 위에는 아테네 도시의 수호자가 되기 위한 경쟁을 하는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세긴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신전 안에는 거대한 아테나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졌던 첫 번째 신전은 아니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동쪽 끝에 위치했던 더 오래된 신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페리 시아 전쟁 때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은 아테네 인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파르테논을 만들었던 아테네 인들의 생각에 페르시아 전쟁은 매우 중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아테네는 침략당했고 페르시아인들은 아크로폴리스를 약탈했고 신성한 장소인 신전을 파괴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 인들은 구 신전의 유적을 없애지 않기로 맹세했고 영원히 기억할 파르테논 신전을 아테네의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가 엄청나고 값비싼 건물을 짓기 위한 델로스 동맹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델로스 동맹은 페르시아인에 맞서 그리스인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세금을 납부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협회입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그 기금에 손을 댔고 결국 파르테논신전을 지었습니다. 원래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이 동맹, 기금, 보물들은 델로스 섬에 위치했습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그 보물을 아테네로 옮길 수 있었고 실제로 아크로폴리스에 세웠습니다.

아테나의 조각 자체는 금과 상아로 만들어졌고 만약 전쟁기금이 필요할 경우 아테나 조각을 장식한 어마어마한 양의 금을 녹여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 보이는 것처럼 하얀색이 아니라 당시에는 밝게 채색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숭배를 하기 위해 가는 장소로 사원이나 교회나 모스크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밖에는 일반적으로 제물들이 바쳐지는 제단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파르테논에는 밖에 있는 제단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볼 때 파르테논은 신전보다는 보물창고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파르테논은 아크로폴리스의 정상부위에 우뚝 솟아있어서 도시의 모든 부분을 내려다볼 수 있고 그것은 도시의 부와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즉, 아테나 여신에게 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세계와 그것의 규칙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이와 같은 구조를 표현하는 사람의 능력은 절대적으로 적절한 것입니다.

이상적인 비례와 관련되어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을 생각해내기 위한 기초로 수학을 사용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실제로 우리 시각의 불완전성을 바로잡는 일련의 미묘한 왜곡들에 기반한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인식 자체에 결함이 있으며 완벽함에 대한 시각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정교한 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수학과 건축기술은 이것을 잘 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정확했고 모든 돌이 정확하게 맞도록 절단되었습니다. 우리가 파르테논을 볼 때 그것이 모두 직선이고 직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파르테논은 직각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파르테논에 역동감을 주기도 합니다. 만약 직선으로만 표현했다면 그것은 매우 정적이고 생동감이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리스인들은 약간의 배흘림 조정이라 불리는 엔타시스 양식을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기둥은 중앙을 향해 볼록해집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곳에 사용된 정도와 방법에서의 미묘함은 유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건물의 무게가 약간의 볼록함에 의해 바닥으로부터 약 1/3 지점의 기둥에 있는 엔타시스에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직적으로 뿐만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이러한 외도된 외곡을 볼 수 있습니다.

신전의 바닥이 평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자리가 중앙보다 아주 약간 더 낮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의 눈은 자연스럽게 이런 미묘한 외곡을 평평한 선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또한 기둥들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 역시 착시현상을 이용해서 건물이 수직처럼 보이게 만든 정교한 장치들입니다.

파르테논은 17세기까지 거의 2,000년이란 세월 동안 상당히 좋은 상태로 유지되었습니다. 고대에는 아테나 신전으로 사용되었고 로마시대에는 가톨릭 교회가 되었고, 그다음은 모스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오스만과 베니스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베니스 인들은 파르테논을 공격했습니다. 오스만이 무기와 화약을 저장하기 위해 파르테논을 사용했기 때문에 화약이 내부에서 폭발했고 파르테논은 상당 부분 무너져 내려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됩니다.

또한 영국의 "엘진"은 터키 정부로부터 신전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가져가는 것에 대한 허가를 받고 그것들을 영국의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갑니다. 현재 그리스는 영국 정부에 계속해서 파르테논의 조각들을 반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영국도 언젠가는 이 조각들을 그리스에게 반환해주어야겠지만 그리 쉽게 일처리가 되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영국 측의 주장은 만약 영국에서 조각들을 가져가 잘 보존하지 않았다면 더욱 훼손되어 못 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현재 그리스는 파르테논 신전의 복원을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방문했던 당시나 지금이나 아주 천천히 복원되고 있기는 하지만 완벽한 복원은 힘들더라도 조금이라도 과거의 모습에 가깝게 완벽한 고증에 근거한 복원이 이루어지고 빠른 시간내에 양국 간의 협의가 잘 이루어져서 아름답게 복원된 파르테논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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