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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삼국지 제갈공명(제갈량) 일대기

by 아키텍트류 202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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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제갈량(제갈공명)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게 되는 사나이입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공자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 남자! 제갈량의 일대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제갈량은 자는 "공명" 호는 "와룡"으로 181년 서주 "낭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갈량은 아버지가 어릴때 죽었기에 작은 아버지인 "제갈현"에게 의지하며 형주 용중에 살게 되는데 어려서부터 재주가 빼어나 현인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제갈량은 키가 무려 190cm에 얼굴이 백옥같이 희어 말 그대로 키 크고 잘생긴 훈남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반면 그의 부인 "황월영"은 머리카락이 노랗고 얼굴이 시커먼 추녀였으니 "공명이 부인 고르는 것은 배우지 마라"라는 말이 생겨났다 합니다. 

하지만 황월영은 외모와 달리 지혜롭고 재주가 비상했다 하는데 군량 운반 장치인 목우유마, 대량 살상무기인 연노 등이 그녀의 발명품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편 신야에 머물던 유비는 수경선생 "사마휘"를 우연히 만나 그에게 세상일에 관해 묻게 되는데 사마휘는 "북룡"과 "봉추" 두 사람 중 하나만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북룡이 "제갈량"임을 알게 된 유비는 그를 얻기 위해 세 번이나 그를 찾아가는 정성을 들이게되는데 제갈량은 결국 마음을 열게 되고 유비와 "천하삼분지계"를 논하게 되니 이것이 그 유명한 "삼고초려"입니다.

제갈량을 얻은 유비는 항상 제갈량과 같이 하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같은 방에서 잠을 청하게 되니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가 불만을 품게 됩니다. 이에 유비는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고 말하며 그들을 다독였으니 "수어지교"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유표"가 죽고 대를 이은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제갈량은 동오의 손권에게 가서 조조와 맞서 싸우도록 설득을 하게 됩니다. 이때 오나라의 내놓으라는 장수인 "장소", "우번". "보증", "설종", "육적", "엄준" 등이 항복을 주장하고 제갈량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제갈량의 당당하고 날카로운 언변에 그들은 말문이 막혀 버립니다.

이를 본 "손권"은 칼로 책상을 자르며 항전을 결심하게 되니 "주유", "정보", "노숙"과 수군 5만을 적벽으로 보내 조조군과 싸우게 합니다. 결국 유비, 손권이 이끄는 10만 연합군은 적벽에서 조조의 10만 대군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북서쪽에 위치한 조조의 배를 불태우기 이해서는 반드시 남동풍이 불어 야만 했습니다.

이에 제갈량은 남병산에 제단을 쌓고 단식기도하여 남동풍을 부르게 되니 기회를 놓치지 않은 주유는 화공으로 조조군의 모든 배들을 불태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적벽대전"입니다. 적벽 대전에서 승리한 유비는 형주를 공격하여 남군을 취하게 되고 곧바로 관우를 장사로 , 장비를 무릉으로 , 조운을 계양으로 보내 형주 남부 마저 장악합니다.

시간이 흘러 한중의 장로가 유장을 공격하자 유비는 이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봉추, 방통과 함께 입촉을 하게 되니 제갈량은 군사중랑장으로 임명되어 형주를 지키게 됩니다. 하지만 군사 "방통"이 낙봉파에서 장임의 화살에 죽게 되고 유비가 "촉"에 고립되니 제갈량은 구원에 나서게 됩니다. 

제갈공명은 장비, 조운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장강을 따라 강주를 거쳐 성도를 포위하니 유장은 결국 항복하게 됩니다. 손권이 형주를 습격해 관우를 참수하자 유비는 크게 노하여 손권을 공격하게 되고 제갈공명은 성도에 남아 후방을 지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비는 이릉에서 오나라의 "육손"에게 대패를 당하게 되고 병이 깊어져 백제성에서 죽게됩니다.

이때 유비는 제갈공명을 불러 "내 자식 놈이 보좌할만하면 그를 돕되, 부실하다면 그대가 스스로 황제가 디라"라는 말을 했으니 제갈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온 힘을 다하여 죽을 힘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유비의 이릉대전 패배로 촉나라의 손실과 상처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위나라 황제 "조비"는 유비가 없는 촉나라를 사실상 없는 나라로 치부했을 정도며 남쪽에서는 "맹획"을 주도로 한 대규모 반란이 발생합니다.

제갈량은 남만의 반란을 진압하러 직접 출병하게 되고 결국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칠종칠금"의 아량을 베풀어 남만의 민심을 사로잡게 됩니다. 남만 정벌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지는데 강이 갑자기 거칠어져 건널 수 없게 된 제갈량은 제물로 사람의 머리를 바쳐야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전설을 알게되는데 제갈량은 사람의 머리를 대신하기 위해 밀가루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머리 형상을 빗어 제사를 지냈으니 이것이 만두의 유래라고 합니다.


남만을 평정한 제갈량은 정치,군사,경제를 견실하게 다지게 되고 "평년만 되어도 다른 곳의 풍년이요. 흉년이라 해도 다른 곳의 평년이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촉한의 국력을 강화시키게 됩니다.

1차 북벌을 기습적으로 진행한 제갈공명은 남안, 천수, 안정 3군을 항복시켜 기세가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이후 제갈량은 북벌의 핵심이었던 "가정"을 점거하기 위해 아끼던 장수 "마속"을 선봉으로 보내게 되는데 하지만 마속은 가정을 지키라는 제갈공명의 명령을 어기고 산 위에 진을 치게 되니 결국 물줄기를 끊어버린 "장합"에게 크게 패하고 맙니다. 

마속의 패배와 동시에 제갈공명의 1차 북벌이 허무하게 끝나게 되고 제갈공명은 군율에 따라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어버리니 이것이 "읍참마속"입니다. 한편 병력이 없는 상태로 퇴각하던 제갈공명은 양평관에서 "사마의"의 대군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제갈공명은 성문을 활짝 열고 홀로 성루에 올라 거문고를 타는 "공성계"를 펼치게 됩니다.

복병이 있을거라 의심한 사마의는 결국 퇴각하게 되니 훗날 제갈공명에 당했다며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제갈공명은 이후 4차례나 위나라를 더 공격했으나 "학소", "사마의"를 비롯한 적의 방어를 끝내 깨트리지 못하게 되는데 마지막 5차 북벌에서 제갈공명의 건강이 악화되자 "너르고 너른 하늘아 너에게도 끝 간데가 있더냐"라는 슬픈 말을 남기고 결국 죽게 됩니다.

제갈공명이 죽자 이를 눈치챈 사마의가 추격해오지만 미리 만들어놓은 제갈공명의 목상을 본 사마의는 지레 겁을 먹고 퇴각하게 되니 죽은 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의를 도망치게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갈공명(제갈량)의 일대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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