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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드로스 대왕)

by 아키텍트류 2019.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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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렉산드로스편 및 시오노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3편을 참고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 생각했고, 유럽인들의 자부심이며 불꽃처럼 살다간 불새출의 영웅. 로마의 카이사르가 가장 닮고 싶어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부왕 필립포스2세의 독살이후 마케도니아의 왕이된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전역을 전광석화같이 평정한 후 5만의 그리스연합군을 편성하여 동방원정을 떠나게 됩니다.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지금의 터키지방인  그라니코스강에 도착한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출신 용병대장  멤논이 지휘하는 페르시아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이때, 그의 부하 장군이 그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우리가 지형상 불리하니 새벽에 기습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내가 너였다면 나도 그렇게 말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렉산드로스다. 나는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낮에 강을 도강하여 페르시아와 첫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이전투가 알렉산드로스의 첫번째 전투인 그라니코스 전투입니다. 알렉산드로스 입장에서는 강을 건너고 강뚝을 올라가서 공격해야 하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가장 눈에 잘띠는 화려한 갑옷을 입고 직접 기병을 지휘하여 몇번의 실패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결국 교두보 확보에 성공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중앙에 팔랑크스라는 장창보병을 배치하고 양날개에 기병을 배치해서 마케도니아군의 특기인 망치와 모루전법을 사용해 페르시아군을 괴멸시키게 됩니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승리의 기세를 몰아 해안의 주요 도시들을 모두 정복하면서 남하를 하게 됩니다.  첫번째 전투인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는 다리우스왕이 직접 100만의 군사를 지휘하여 5만에 불과한 알렉산드로스와 이수스에서 2번째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이수스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다음과 같이 병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전사들이여! 적은 우리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겁낼것 없다. 신의 아들인 나 알렉산드로가 선봉에 서서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를 잡아올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전광석화처럼 기병을 활용하여 직접 페르시아군의 중앙에서 지휘하고 있는 다리우스왕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에 다리우스왕은 도주하게 되고 이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왕비,딸들이 알렉산드로스에게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도주한 다리우스왕은 결국 알렉산드로스에게 강화요청을 하게됩니다. "페르시아땅의 절반과 내딸과의 결혼도 허락하겠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원했던것은 페르시아제국 전체를 정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리우스왕의 강화요청은 무산됩니다. 이수스전투이후 계속남하해서 이집트에 입성한 알렉산드로스는 쉽게 이집트를 정복하고 그리스풍의 신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조성하고 이후 정복하는 도시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들을 만들게 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다시 다리우스왕과의 세번째 전투를 위해 가우가멜라 평야 지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한편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역시 권토중래 다시 100만이 넘는 군대를 재정비하여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시 한번 맞붙지만 이 전투 역시 패배하게 됩니다. 다리우스왕은 가까스로 도주에 성공하게 되지만, 결국 부하의 손에 죽고 맙니다.
이렇게 해서 페르시아 전체를 정복하게된 알렉산드로스는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도지역까지 원정을 떠나게 됩니다. 인도 히다스페스 지역의 포로스왕이 이끄는 코끼리 부대에 맞서서 고전한 알렉산드로스는부대를 둘로 나눠 속임수와 심리전을 사용해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히다스페스 전투 승리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계속 동쪽으로  정복전쟁을 추진하려 했지만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고향을 그리워하는 부하들의 반대에 결국 회군할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회군 도중 서른세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병에 걸려서 죽었다는 설도 있고 항간에는 독살 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짧은 생을 뒤로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군은 그후 여러 장군들의 내분에 의해 제국이 분열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은 광활한 정복지에 헬레니즘문화라는 그리스풍의 문화를 전파했고, 이것이 결국 불교문화에 회화와 조각에 영향을 주어서 불상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석굴암에서 볼수있는 부처상 역시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 중 하나라고 하면, 우리도 결국 알렉산드로스와 무관하다고 말할순 없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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