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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안나 카레니나 줄거리 / 단순한 불륜소설이 아니다!

by 아키텍트류 2019.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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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는 단순히 불륜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소설의 구성은 두 남녀(안나, 블론스키)의 불륜과 파멸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의 사회상 등이 작가 톨스토이에 의해서 사회 비판적 장치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품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안나가 기차를 타고 공간적 이동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당시 서구화를 열망하며 급격한 사회 변혁을 하고 있던 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즉, 서구화를 의미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봉건적 사회를 의미하는 모스크바라는 공간적 장치를 통해 자유를 열망하는 안나가 봉건적 공간인 모스크바에서 치러야 했던 자유의 대가를 절묘하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나가 갈망하는 자유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봉건적 사회였던 러시아의 결혼 방식에 따라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아닌 집안에서 귀족 간의 정략결혼에 따라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모스크바 역에서 우연히 보게 된 러시아 기병장교 블로스키를 통해 그녀의 자유 의지는 꿈틀거리게 되고 결국 그녀도 어쩔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가 갈망했던 자유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을 뿐입니다. 작가 톨스토이는 급격히 서구화된 제정 러시아 시대를 이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비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작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 보록 하겠습니다.

일단 분량 자체가 상당히 방대한 편입니다. 편집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읽은 책은 출판사에서 총 3권으로 편집을 했는데 각 권의 두께가 상당합니다. 마음먹고 읽는 걸 도전했다가 그 후덜덜한 분량에 주눅이 들어서 중간에 책을 덮더라도 누가나 이해할 수 있을만한 그런 분량의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은 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읽어보시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명의 러시아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가리켜 완전무결한 예술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사랑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왜 안나 카레니나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는지를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등장인물에 대해서 알아보면, 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 안나는 유부녀입니다. 그의 남편의 이름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라는 러시아 상류층의 남자이고 두 사람은 집안의 정략 결혼에 의해서 맺어졌고 따라서 서로 사랑의 감정은 없어 보입니다. 나중에 남편이 안나의 불륜을 알아차리지만 모른채할 뿐입니다. 그녀를 용서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품위에 해가될까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봐서 둘 사이의 애정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알료샤라고 합니다.

그리고 안나에게는 스테판 아르카지치라는 친정 오빠가 있고 돌리라는 올케도 있습니다. 그리고 돌리에게는 키티라는 친여동생이 있고 키티는 레빈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 레빈은 스테판 아르카지치의 친구입니다. 그러니까 스테판 아르카지치와 레빈은 친구이면서 동서지간이 되는겁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문제적 남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브론스키라는 젊은 장교가 있습니다. 이렇게 일곱 명이 안나 카레니나의 주요 인물들입니다. 

 

그럼 이제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굉장히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바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면서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복선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의 오빠인 스테판 아르카지치가 가정교사와 바람이 난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스테판의 아내인 돌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의 가정은 파경을 맞게 되는데 이 사실을 안 안나는 오빠의 가정을 되살리기 위해 돌리를 찾아갑니다.

차갑게 식어있던 돌리의 마음은 안나의 간절하고 진정 어린 설득으로 녹아내리게 되고,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됩니다.

목적을 달성한 안나는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이 첫 만남에서 총각이었던 브론스키는 안나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지만 안나는 유부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크게 마음을 쓰지는 않습니다.

한편, 돌리의 동생인 키티라는 아가씨는 마음속으로 브론스키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스테판의 친구인 레빈은 키티를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고 낙심한 레빈은 시골로 낙향하게 됩니다. 이들의 애정전선에 불꽃을 튀기는 계기는 한 무도회에서였습니다.

무도회에서 브론스키는 키티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너무나도 아름다운 안나에게 반하게 되었고 그 뒤로 끊임없는 애정 공세를 펼치게 됩니다.

안나는 처음에 브론스키의 애정 공세를 거절하지만 결국 그에게 넘어가고 맙니다. 한동안 브론스키와의 위험한 밀회를 계속하던 안나는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아들을 떠나 동거를 합니다.

안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남편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죠. 유책 배우자인 아내가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없기도 하거니와 완벽주의자인 남편에게 있어서 이혼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이력을 가지고 싶지는 않은 것이었습니다.

한편, 브론스키를 사랑했던 키티는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레빈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닫고 그와 결혼하게 됩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가지게 되지만 사정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남편과는 깨끗하게 이혼하지 못했고 아들 알료샤가 보고싶지만 볼 수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브론스키의 사랑이 변하고 있다며 의심하게 됩니다.

사실 브론스키의 안나를 향한 사랑은 변함없는데 안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브론스키의 사랑 하나뿐이었기 대문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마음이 변했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죽음으로 그의 변심을 징벌하려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한편 레빈과 키티는 자식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은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와 생각을 너무나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불륜을 저지른 안나의 심리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안나가 가정을 버리기까지 왜 고민과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요즘도 불륜을 저지르면 사회적인 비난이 어마어마한데 그 당시에는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사회적 지탄을 감수하면서도 가정을 버린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브론스키의 사랑 때문이었을 겁니다. 안나는 가정을 버렸지만 자기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도 많이 느기는데 자신을 용서하겠다는 남편을 떠올리면서 그를 미워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자기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누군가가 그걸 지적한다든지, 죄책감을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를 싫어하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자기 잘못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인 태도를 너무나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브론스키를 따라 나선 후 안나에게는 브론스키의 사랑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전부가 된 브론스키의 사랑이 변하거나 사라질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실제로 브론스키의 사랑은 변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언행으로도 브론스키의 마음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브론스키는 자신이 여전히 안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이야기 하지만, 안나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결국 그녀는 변심한 브론스키를 벌주겠다는 일념으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했던 안나는 어느 순간 브론스키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행복의 원천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서 찾으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불안과 불행속에서 살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속에 등장하는 레빈은 잘난 형제들과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무언가 모르게 열등감을 느끼고 위축되는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키티가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었을 때 쉽게 믿지 못하기도 합니다. 레빈은 키티와 결혼하고 나서도 자신감을 빠르게 회복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레빈 역시 안나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와중에서 안나와는 달리 새로운 희망을 찾아냅니다. 비록 완전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불완전한대로 마음 속의 허무함에 대응하며 살아갈 자신감을 얻어 내는 것입니다.

안나 역시 레빈처럼 살아갈 희망을 찾아냈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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